사실 내가 커피를 선택했다기보단 커피가 나를 구원했다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캐나다에서 유학하는 네 살 터울 형을 보러 캐나다에 건너갔더랬다. 그때 처음 스타벅스를 접했다.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에 형을 따라 들어간 스타벅스엔 초록색 앞치마를 입은 친절한 바리스타들이 원래 알던 친구처럼 "Hello! What can I get for you?" 라고 말했다. 그때가 아마 커피와 첫 인연이 아닌가 싶다.
형이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형은 일찍이 담배를 배웠고, 선생님과 쉬는 시간에 맞담배를 피우는 자유분방함에 반해 한국으로 돌아와 3년간 엄마를 졸라 난 캐나다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그때가 딱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캐나다에서의 삶은 한국과 다르게 날마다 새롭고 즐거웠다. 한국에서 수학 20점 받던 낙제생이 캐나다에선 식은 죽 먹기처럼 100점 행진을 이어갔다. 어릴 적부터 영어를 좋아했던 터라 영어 수업도 그럭저럭 따라갈만 했다.
대학생이었던 형이 학교를 옮기게 되어 형이 살던 집에 내가 살게 되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2학년부터 대망의 '나 혼자 산다'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기대와 다르게 홀로 사는 삶은 녹록지 않았다. 매일 같이 밥을 해먹고, 빨래를 하고, 학교에 가고, 돌아오면 아무도 없는 빈 집을 마주하는 게 쓸쓸하고 두려웠다. 어느샌가 난 학교가 끝나면 항상 집 근처 Dundas st 버스 정류장 앞에 있던 스타벅스에 출근하게 되었다.
잘 생긴 금발의 Rio과 그의 여자친구 Kristina, 키는 작지만 마룬5의 애덤 리바인을 닮은 Tom은 이내 내 이름을 기억해주었고, 나의 페이버릿 메뉴였던 런던 포그(얼그레이 티로 만든 라떼)를 말하지 않아도 내주었다. 사실 난 스타벅스의 커피가 맛있어서 매일 같이 $3.50을 내고 커피를 사던 것이 아니었다. 유독 백인이 많고 동양인이 전무하던 도시에서 외톨이라 느껴졌던 나에게 스타벅스 직원들은 커피 한잔 이상의 친절을 베풀어주었고, 내 친구가 돼주었다. 매장이 끝나고 나면 그들만의 피자 파티에 불러 주었고, 당시 물가로도 비싼 축에 속했던 유통기한 얼마 남지 않던 샌드위치를 노숙자 연합에 보내는 대신 나의 점심으로 챙겨주었다. 난 자연스레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는 이렇게나 친절하고 쿨하구나! 라고 느꼈던 것 같다.
대학교에선 (한국에도 진출한) 팀홀튼에서 매일 같이 블랙커피와 베이글 샌드위치를 먹으며 아침을 보내고, 밤을 새우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형편없는 네 살 커피였지만 팀홀튼의 커피와 베이글은 내겐 때론 일용할 양식이자, 밤을 새워 공부하게 하여 주는 에너지 그 자체였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와 취준생 생활을 시작했다. 쥐뿔도 없으면서 눈만 높았던 나는 중소기업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대기업만 지원했는데 이력서조차 복붙으로 회사 이름을 실수해서 보낸 탓에 취준 결과는불 보듯 뻔했다. 그럼에도 그런 나를 구원 해준 게 커피였다.
캐나다 스타벅스와 비교하면 한국 스타벅스가 맛이 없길래 커피에 대해 네이버에 찾아보다 우연히 집 근처 '커피점빵'이란 스폐셜티 커피를 취급하는 카페를 발견하게 된다. 그곳에선 퍼블릭 커피 시음이란 걸 했는데 사람들과 갓 볶은 커피를 왕수저로 호로록하고 마시며 평가하는 행위였다. 취준도 자꾸 실패했겠다, 심드렁한 얼굴로 카페에 들어선 나는 곧 처음 마셔보는 커피의 맛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당시 난 에티오피아 내츄럴 커피를 마시고 '장마에 1주일치 비를 맞은 눅눅한 신문지' 향이 난다 표현했더랬다. 나의 엉뚱한 대답에 모두가 빵 터졌는데 정작 나혼자만 황당했더랬다. 당시 사장님은 내 어깨를 두드려주며 말했다.
'클롸드도 커피의 세계에 빠지고 몇 년이 지나면, 오늘 마신 커피 맛을 더 좋아하게 될걸요?'
그의 예언은 보기 좋게 적중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고, 커피점빵은 로우키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여 업계의 리스펙을 받는 멋진 브랜드로 성장했고 나 역시 신문지 눅눅한 향이 가득한 스페셜티 커피와 사랑에 빠져 커피클래스를 운영하고, 블로그를 운영하고 카페까지 운영하게 되었다.
내가 커피를 택한 이유는 심플했다.
지갑이 넉넉지 못한 고등학생, 취준생 신분이었던 내겐 카페는 커피 한잔 돈만 내면 몇 시간이고 나만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커피를 좋아하는 선배들도 만날 수 있는 아지트였다. 아무리 마셔도 살이 찌지 않는 다는 점도 좋았다.
심플한 이유로 사랑에 빠지게 되었던 커피 덕분에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무작정 건너간 상하이에서 다양한 친구를 사귀게 되었고, 커피벙개를 통해 다양한 한인 친구들 역시 만나게 되었다. 그때 시작한 커피클래스가 서울에 돌아와 이어져 '아워삶 커피 스탠드'라는 카페를 오픈에까지 이어졌다. 어느 나라를 여행을 가도 항상 점찍어 놓은 카페를 가면 금새 커피로 맺어진 친구가 도시마다 생겼다.(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아마 커피를 통해 맺어졌을지도..) 게다가 커피 크리에이터로 인정받아 여행 앱에 유료 기고도 하고 있다.
커피는 내게 모든 것을 내주었다. 외로울 땐 친구를 사귀게 해주었고 힘을 내야 할 땐 나홀로도 있는 힘껏 힘을 낼 수 있게 도와주었다. 커피를 마시지 않았더라면 지금 내 삶은 어떻게 되었을지 이루 말할 수 없다. 고로 내가 커피를 택함이 아닌 커피가 날 택한 게 아닐까 싶다.
커피로 만난 인연들에 너무도 많은 것을 받았다. 지난 10년간 받은 사랑과 에너지를 나 역시 다시 커피를 좋아하는 이들과 나누고 싶다. 그것이 지금도 내가 커피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마시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지금도 난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며 캐나다행 첫 편지를 마무리한다.
(참고로 디카페인 커피는 카페인이 2%밖에 없으니 늦은 저녁에 마셔도 만사 오케이.)
서툰 글솜씨로 뉴스레터에 도전하는 나의 무모한 용기도 아마 이 커피에서 나온 게 아닐까 싶다.
커피는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때론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믿는다.
고로 내일 아침엔 어떤 커피를 마실까 벌써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