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호.
자신감의 원천
S가 혀 꼬인 소리로 말했다. "오빠는 어떻게 그렇게 자신감 있게 도전하고 살아?"
집에 오는 지하철 안에서 생각해 보았다. 난 무엇에 자신 있는 걸까? 아니, 무엇이 날 자신감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걸까.
하나. SNS의 모습이니깐
냉정히 말하면 블로그와 인스타에 올려진 나의 하이라이트 조각들로 나를 그럴싸한 모습으로 포장에 능한 걸지도 모르겠다. 상하이에서 오랫동안 외노자로 살았고 영어와 중국어도 하면서 꽤 자주 여행을 다니면서도, 나름의 글로벌 회사에서 직장생활하고 있었고 그러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커피 클래스를 열다 결국은 카페도 열었다. 누군가는 내가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사는 사람으로 보인다는 이야길 해줬다. 결국은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게 인간의 심리가 아닌가 싶다.
나 자신을 그리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지 않는다. 사실은 누구보다 겁쟁이에, 거짓말 잘하고 얄팍한 사람임을 잊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도 세상에 되도록 작은 희망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이렇게 평범한 나라도 꾸준하게 노력하면 무엇이라도 되더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둘. 일단 부딪치는 태도
인생에 돌이켜보니 허무맹랑하고 터무니없던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현실적이었던 목표나 소망은 이룬 게 많았다. 캐나다에 유학을 가고 싶어 부모님을 중학교 3년간 설득해 결국 캐나다 유학길에 오른 것. 중국어는 안녕하세요. 밖에 못하는데 영어가 하나도 안 통하는 시골 도시에서 중국 생활을 시작했고, 좋아하는 취미였던 '커피'로 밥벌이를 해보고 싶어 돌연 회사를 그만두고 캐리어 두 개 들고 무작정 상하이로 떠났다.
나는 작은 것에는 매우 계획적인 인간인데, 인생의 큰 결정에선 육감적으로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일단 저질러 버린 게 많았다. 결과적으론 덕분에 계획에 없던 행운을 만나서 상하이에서의 삶이 7년이나 지속되었다.
'내 앞에 어떤 삶이 와도 어떻게든 잘 살 수 있다'라는 믿음이 있다. 삶에 대한 행복감은 물질적인 풍요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많은 연예인과 재벌의 자살과 타락을 보며 간접적으로 배웠다. 나 역시 돈을 더 많이 벌던 시절보다 한 달에 50만 원 받으며 주 6일 일했던 중국에서의 시절이 불안했지만, 행복함을 더 자주 마주하지 않았나 싶다. 고로 내 자신감의 원천은 일단 도전해 보면 뭐라도 배운다. 라는 마인드 셋에서 나옴이 아닌가 싶다.
경험주의적인 삶의 태도가 그래도 나의 한계를 넓혀주는 것 같다.
'경험해보자. 어라, 이거 해봤더니 되네? 아니네.. 이거 나한텐 별로네.'
도전과 실패 그리고 성공의 경험이 쌓이며 자신을 믿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완벽주의는 버리고 작고 하찮더라도 일단 시작해야 한다.
완벽한 선택을 하려 하기 보단, 이미 질러버린 선택을 옳게 만드는 의지만이 필요하다.
셋. 평범해도 괜찮아
내가 그리 잘나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태도일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얼마나 평범한 인간인지 깨닫는다. 그래선지 전처럼 근거 없는 자신감은 사그라들었다. 형편없는 자신에 대해 거짓말 하지 않고. 나름의 장단점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살아가려 는 태도가 내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단단함의 힘을 길러준 게 아닐까 싶다.
넷. 꾸준함
19년째 블로그에 기록하고, 커피와 운동을 10년 이상 즐겨왔다. 딱히 글쓰기나 운동이나 커피 만들기에 엄청난 재능은 없지만서도 꾸준히 누가 뭐래도 내가 좋아하는 것에 시간을 들이고, 꾸준히 취향을 쌓아간다는 점에서 그래도 나름의 자부심이 있다. 굳이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더라도 나만이 아는 노력의 축적. 그것이면 충분하다.
다섯. 작지만 확실한 일상의 행복들
어릴 적엔 허무맹랑한 이상만 꿈꿨다. 이를테면 서른 살이 되면 코엑스 아셈타워 빌딩 꼭대기에서 일하는 사장이 될 거야! 라는 근거 없는 꿈만 있었다. 대학교부터가 내가 원하는 대학을 입학하지 못하면서 노력 없는 이상은 개꿈임을 깨달았다. 요즘은 주어진 환경을 바꾸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내가 노력해서 바꿀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보려 한다. 매일 콜드 샤워를 하고, 베니와 산책하러 가고, 업무에 집중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것. 그런 작은 일련의 것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나를 단단히 지탱해 주는 것이다.
누구보다 터프하고 단단한 사나이로 알려진 이소룡이 말했다.
"Be Water, My friend"
결국 궁극적인 자신감은 유연함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어떤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하는 사람을 보면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오롯이 불도저 같은 스타일로 살기보단 내가 삶을 살아가며 어떠한 노력을 해도 바꾸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상식적이지 못한 사람이나 상황을 만나도 '그럴 수도 있지~'라며 물처럼 형태를 바꾸어 흘려보내는 유연함. 그런 유연함과 겸허함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더욱 자신감 있게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천안행 버스에 몸을 싣는 S에게 대답했다.
"나도 늘 불안하고, 흔들려~ 근데 그게 인생의 재미 아니겠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