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지라 사주를 본 적은 없지만 아마 나는 해외에서 돌아다닐 팔자였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엔 미국에 가서 한국과는 또 다른 자유분방한 문화에 눈을 뜨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중학교 땐 교회 선교로 방문한 인도와 베트남에서는 껌 하나에도 너무도 즐거워하는 현지 아이들을 마주하며 내가 한국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달았다. 고등학교 땐 캐나다에서 생활하며 본격적인 해외살이를 경험했다. 그 후로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잠시 1년 취업 준비 시간 후로 중국에서 생활했으니 내 삶의 절반은 해외에서 이뤄진 셈이다.
잠시의 여행과 현지에서 지지고 볶고 사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많이들 상하이에 여행을 와서 상하이에서 자유롭게 사는 것 같은 나의 삶을 부러워했지만, 해외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로컬에 비해 많은 차별을 각오하고 살아야 하며, 고향이 그리운 향수병(Home Sick)과 시도 때도 없이 마주 봐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해외에서의 삶을 여전히 매우 긍정하고 누구에게든 추천하고 싶은 바이다.
무엇보다 해외에서 살 게 되면 솔직한 자신을 마주할 수 있다.
누구도 날 알아보지 못하고, 내가 어떤 말을 한국어로 뱉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는
한국에서는 해보지 못했던 과감한 행동과 삶을 살아볼 수 있다.
난 사람은 하나의 자아 또는 성격으로 규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아이처럼 해맑고 명랑한 자아도 있고, 때로는 매우 진지하고 조용한 자아도 있는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주로 후자의 자아로 사는 편이고 외국에 나가면 전자의 밝은 자아의 나로 살아가곤 한다. 아무래도 주변 눈치를 덜 보게 되니 더 솔직할 수 있고, 내 안에 숨어있던 순수함이 나오는 것 같아 좋다.
한창 중국에서 여행을 다닐 땐 2주마다 목·금·토·일 이렇게 휴가를 붙여서 중국 내 여행을 다녔다. 중국, 미얀마, 인도, 베트남을 하나로 이어주는 산맥을 걸어보기도 하고 진싱황과 그의 부하들의 무덤지인 병마용갱을 가보기도 했다. 그렇게 다양한 여행지를 홀로 다니며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고 덕분에 앞으로의 인생을 어떤 태도로 살아 가야 할지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여행을 하다보면 위험한 순간 위험한 순간도 많이 겪게 된다. 태국에서는 강도를 만나 칼에 찔리기 직전에 가보기도 하고, 베트남에서는 오토바이에 치여 기억상실을 겪은 적도 있다.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다니지 않기에 이러한 위험을 겪게 되면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겨 여행 가기를 꺼리게 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난 여행을 지금도 정말 사랑한다.
여행지에서 마주하는 낯선 사람과 잠시나마 나누는 솔직한 대화를 통해 그간 가져온 인생의 고민에 해답을 발견하기도 하고, 기대하지 않고 갔던 여행지에서 이루 못할 아름다운 풍경과 사람에게 감동하기도 했다. 여행하며 참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끼기도 했지만, 오히려 스치는 인연들이 내게 베푼 선의들에 늘 감동하여 왔다. 그래선가 한국에서도 여행자가 보인다면 늘 그때 내가 받은 호의를 그대로 돌려주려 노력한다.
내게 여행의 묘미는 솔직함에 있다. 벌거벗은 자신을 솔직하게 바라보고 남들 역시 나의 이름과 배경을 모른 채로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이 참 좋다. 그래서 아마 나는 여자친구가 있어도 항상 홀로 여행을 떠나길 고집한 것 같다. 홀로 가는 여행의 대부분은 고독하고 지루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얼마나 쿨한 하루를 보내는지 열심히 10개 넘게 스토리를 올려보기도 한다. 그걸로 모자라 여행 중 만나는 모든 순간을 녹화하여 유튜브로 남겨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정말 내 가슴에 남는 것은 역시나 사진이나 영상이 아닌 내 두 눈과 귀로 담은 대화와 이야기들이었다. 낯선 세계에 홀로 동떨어져 엉망진창의 새로운 나 자신을 만나보는 경험. 그리고 평소엔 만나지 못할 새로운 형태의 친구와 친구가 되어 인스타를 교환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것. (때론 그 만남이 두 번째, 세 번째로 이어질 때의 반가움이란!) 이 모든 것들이 내가 20대부터 꾸준히 일상을 떠나 여행의 길에 오르게 된 것 이유 같다.
반려견 베니를 키우게 된 지금은 예전처럼 느닷없는 여행을 떠나기가 어렵다.
하지만 베니와 함께 한국에서 가보지 않은 지역들을 요리조리 다니면 그것도 내게는 또 새로운 영감과 에너지가 될 것이라 믿는다. 여행이 꼭 해외여행을 필욘 없다. 어떤 여행이라도 내가 일상을 벗어나 솔직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 아닐까?
다가올 이번 여름의 새로운 여행 기대해 보며.